
인간은 사랑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영화를 보며, 사랑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의 대상을 찾고, 사랑 때문에 웃고, 사랑 때문에 웁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랑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추구하는 사랑의 의미와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인 사랑을 추구합니다. 가볍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이나, 사제 간의 사랑, 동료 간의 사랑이나 친구 간의 사랑도 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며 조건 없이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와 설명 가운데서 그 본질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 그 자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사랑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의 대상과 방식에 대하여 최소한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계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자녀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마땅히 자신을 창조해주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마음과 목숨과 뜻’은 인간을 구성하는 전반적인 요소를 가리킵니다. 이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최고로,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계명들’이라는 구체적인 형태의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계명들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사랑을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나 행동’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나 행동은 오히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려,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자기사랑은 자신의 가치를 바로 알고 존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할 때,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근본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해 주셨고,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며,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셋째로, 이웃을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존재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죽을 만큼 때렸고, 심하게 다친 그 사람을 버리고 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사람이 차례로 그 곳을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발견했지만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유대인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을 치료해 주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이 받은 질문은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마치고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이웃은 말로만 사랑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너 자신이 사랑을 베푸는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 사람이 과연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허비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랑은 필수적 요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잘못된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을 오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대상과 방법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본래 ‘추상명사’이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사랑’은 ‘동사’에 가깝습니다. ‘사랑’은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움직이는 행위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인처럼,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이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사랑을 받을 만한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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