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환경’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도 그랬습니다. ‘고향’이라는 말은 ‘태어난 곳’과 ‘자라난 곳’을 함께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경우, 베들레헴에서 났지만 나사렛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라고 불립니다.(누가복음 4:16, 23)
고향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자연스럽게 물어봅니다. 예수님이 성장한 지역에 대해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요한복음 1장 45절부터 보겠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다나엘과 예수님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이 인자(人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나다나엘은 마음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아직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겉모습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습성, 특히 출신 지역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사고방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무심코 한 말, 즉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던 편견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만나기도 전,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의 내면을 정확히 알아보셨습니다. 나다나엘은 매우 놀라면서 예수님의 신성과 권능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출신 지역이라는 겉모습은 좋은 성장 환경에 대한 기대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할 때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수도인 한양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권하면서 자식의 장래를 염려한 내용이 나옵니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까지 있는 것을 볼 때, 세상이 인정하는 좋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당대의 대학자도 공감한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세계적으로도 도시 집중화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세상 사람들은 자기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지역성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유대인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었던 다윗은,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었습니다.(사무엘상 16:1) 다윗이 출생하고 성장한 곳은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쓰셔서 이스라엘이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어촌 마을 출신이었습니다.(사도행전 2:7)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성장하여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오순절 때 그들이 전한 복음으로 3,000여 명이나 회개하고 순종하여 침례를 받음으로써, 예루살렘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은 국제적 감각을 지니고 현대 문물을 습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는 유복한 환경 속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생명의 복음을 전할 자로 갈릴리 작은 마을 출신 사람들을 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은 우리가 지닌 편견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난 후 날이 밝자 제자들을 부르고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습니다.(누가복음 6:12~16) 일반적인 생각과 너무 다른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택하신 열두 제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각계각층과 연관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교회는 처음부터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맨 처음 복음을 듣고 순종한 사람들은 유대인이었지만, 그들 가운데 다수는 로마 제국 여러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역과 국적을 초월하여 사람을 부르십니다.
지역적 편견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혜롭게 판단하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소망하시는 분은 세상의 편견을 버리고 성경을 대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신 분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던 습관의 잔재를 벗어버리고 충성된 일꾼으로 성장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전도자와의 만남을 원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의교회선교회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 theChurch.kr, 전화: 02-2607-06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