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돛을 단 배가 힘있게 항해하려면 튼튼한 돛과 적절한 바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길도, 꾸준히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의 임재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돛은 있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배와 같다”고 한 찰스 스펄전의 말은 적절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삶의 돛이 바람을 충분히 받아 팽팽하게 펼쳐져 있나요?
1. 시들어가는 영혼의 경고등
신앙인의 삶이, 연료가 떨어져가는 자동차처럼 덜컹거릴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봉사하며 꾸준히 신앙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는 커녕 마음 한구석에 불만만 일고 공허감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내면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을 때, 영적 소진과 관계의 균열이 일어납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가 비수처럼 꽂히고, 직장 동료의 성과가 진심으로 기쁘지 않으며, 나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 성격이 원래 그래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영혼의 뿌리에 공급되어야 할 생명수가 차단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성령의 영향력이 고갈된 자리는 곧바로 인간적인 욕심과 자기 보호 본능으로 채워집니다. 그 결과, 기쁨이 사라지며 의무와 노역만 남게 되고, 겉모습만 남은 종교인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2. 성령 충만은 ‘상태’가 아닌 ‘관계’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뜨거운 집회에서의 황홀경, 많은 사람이 ‘방언’이라고 부르는 언어적 현상, 일시적인 감정 고조 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성령의 역사를 감정의 측면에서만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우리의 감정이 크게 고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령 충만의 본질은 ‘한 번의 짜릿한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다스림’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내 마음대로 부리는 에너지도 아니고 신비로운 도구도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내가 성령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얼마나 온전히 소유하셨는가의 문제입니다. 투명한 컵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져 물 전체의 색을 바꾸듯, 성령 충만은 나의 인격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은 요란한 폭포수이기보다, 메마른 땅을 조용히 적셔 생명을 깨우는 봄비와 같습니다.

3. 성경에서 확인하는 성령 충만의 이정표
성경에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는 명확한 지도를 보여줍니다.
첫째로, 성령 충만을 위해서는 버림과 채워짐이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18) 여기서 ‘받으라’는 부분을 헬라어 본문으로 보면 현재 중간태/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어제 성령 충만했으니 오늘은 쉬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숨을 쉬듯 매 순간 성령의 통치 아래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술의 지배를 받듯,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다스림 가운데 있게 됩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의 증거는 기적적 은사가 아니라 열매로 나타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22-23) 여기 언급된 열매는 ‘성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을 때, 우리 삶의 나무에는 향기로운 성품들이 열매로 맺히기 시작합니다. 가시 돋친 말 대신 온유한 위로가, 조급함 대신 기다림의 미학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게 됩니다.
셋째로, 성령 충만한 삶은 성령과 보폭을 맞추어 인생길을 걷는 일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16) 여기서 ‘행한다’는 말에 담긴 뜻은 ‘걷는다’는 것입니다. 인생길을 성령과 함께 걸으라는 명령입니다. 내 욕망이 앞서 나갈 때 성령께서 내 옷소매를 당기시고, 내가 낙심하여 주저앉을 때 성령께서 일으켜 세워주시는 그 친밀한 동행이 바로 성령 충만의 실제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거창한 결단이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고백과 실천이면 됩니다.
첫째, ‘아침의 고백’을 바꾸십시오. “오늘도 힘들겠지” 하는 탄식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기 전에,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생각과 언어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둘째, ‘멈춤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혹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3초만 멈추고 성령께 자리를 내어드리십시오. “성령께서는 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기를 바라실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마법이 아니라, 매 순간 주님을 의식하는 거룩한 습관을 통해 깊어집니다. 우리들 각자의 삶의 정원에 성령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시기’라는 잡초와 ‘염려’라는 이끼 대신,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사랑과 화평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운전대를 성령께 맡기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분이 운전하시는 길은 비록 좁은 길일지라도, 가장 안전하고 아름답고 눈부신 풍경을 보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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