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교육을 받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이유는 경험과 능력을 키우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체육관에 ‘다니는’ 이유는 건강을 관리하면서 노후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낚시터에 다니는 사람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이고, 야구장에 다니는 사람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다니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가리키지만, 신앙이 있든 없든, ‘교회에 다닌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푹 쉴 수 있는 일요일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옷을 차려입고,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어른들까지 모시고 가는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승용차로 이동하는 경우라면, 일요일 아침이라고 해서 주차장이 항상 여유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편을 감수하고 예배에 참석합니다.
마지못해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나 부모님의 강요 때문에 억지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主)의 날 예배마저 참석하지 않으면 마음이 ‘찜찜하기 때문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누군가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나’와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십자가를 견디신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크게 부르짖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 시편 22편의 예언이 아들의 고통 속에 성취되는 순간,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구해주지 않으셨고, 아무 말씀 없이 그 현장을 그대로 두셨습니다.(마가복음 15:33-34)
아들이 극도의 고통을 받는 그 가슴 아픈 현장을 하나님이 견디신 이유는, 저주받은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억하는 자리가 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연보를 미리 준비하여 공적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 편지에서 고백했듯,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고린도후서 9:15 새번역)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우연히 생성된 유기체가 진화를 통해 다양한 종으로 분화했다는 설명을 상식처럼 여기고 살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손수 나를 빚으시고 지으셨는데…” 하고 고백하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욥기 10:8) 사람을 ‘동물계’의 일원으로 분류하는 것이 극히 부분적으로만 타당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창세기 1:26-27) 사람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끝없는 명철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로마서 1:10; 잠언 3:19)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음을 생각하면, 시편 95편 6절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우리를 유지시키시는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가족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당신이, 거할 곳을 마련해 주고, 생활비까지 매달 꾸준히 지원합니다. 좋은 뜻에서 하는 일이지만,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 정도는 받고 싶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입을 것과 먹을 것과 거할 곳은 물론,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얼굴에 미소를 짓고 숨을 쉬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매 순간이 다 하나님 덕분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사도행전 17:25) 물론,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서 살아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할 수 있는 건강은 누가 주십니까? 이 지구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때에 맞게 햇빛과 빗방울을 내려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하는 시간은 참으로 귀한 시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우리는 죄 많은 세상에서 죄를 배우고, 죄를 지으며 삽니다. 죄의 바다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에베소서 2:8-10) 아직도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실패작이 아니라,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입니다.(베드로후서 3:8-9)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이사야 59:1-2) 죄로 인하여 생긴 깊은 골짜기를 건너는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이 귀한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베드로전서 2:24; 마태복음 26:28; 고린도후서 5:20-21)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용서를 준비하셨습니다.(로마서 5:8-10)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하나님은, 먼 나라로 떠난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저 멀리서 다가오는 아들딸의 그림자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는 참으로 귀한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가오는 일요일, 주님의 날에는, 함께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은혜와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번 소주제는 월간 House to House/Heart to Heart 수록 내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비대면 예배를 변명거리로 삼지 않고 성도들과의 교제와 공적 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는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실천하고 싶으신 분은 그리스도의교회선교회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는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홈페이지: theChurch.kr, 전화: 02-2607-06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