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둘 곳

SmartTract 2025-07-25 (낭독: 민경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이고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람의 삶을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의 말과 행동에 담긴 가치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겉모습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경향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겉모습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육체가 탄생한 가문과 육체의 생활을 위한 직업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육체의 거처가 되는 집 문제,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9장 57~62절에, 예수님이 세 사람과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人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세 사람 중 첫 번째 사람은 각오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용감히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예수께서 하신 대답을 보면, 여우나 새 같은 동물도 저녁이면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지만, 예수님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처소가 불안정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첫 번째 사람의 배경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내용이 마태복음 8:1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서기관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서기관들은 경건주의 유대 종파인 바리새파에 속했습니다. 율법을 해석하고 전수하는 일을 맡은, 유대교에서 가장 지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을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는 예수님의 신랄한 책망이 여러 가지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일갈하기도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外飾)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8) “외식(外飾)”은 겉만 보기 좋게 꾸미는 위선을 뜻합니다. 서기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호기롭게 그를 따르겠다고 하는 서기관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끝까지 따라오지 못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두 번째 사람의 경우를 보면, 예수님이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앞에서 본 사람같이 대단한 각오로 자처하며 나서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은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핑계를 늘어놓았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먼저 끝내 놓고, 그다음에 따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보인 머뭇거림에 대해, 예수님은 단호하셨습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장례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일반 사람, 특히 유교에서 강조하는 ‘효’의 가치가 내면화된 사람이라면, 아버지 장례가 그 무엇보다 먼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성경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시급합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세 번째 사람을 보겠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이 사람은 주님을 따르겠다고 자청했지만, 가족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 정도는 하는 것이 가족된 도리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해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냉정하셨을까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늘나라 전파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함을 역설하시면서, 롯의 아내처럼 머뭇거리고 뒤를 돌아보다가 화를 당하는 경우를 염려하고 경계하신 것이 아닐까요?(누가복음 17:32; 창세기 19:26)

예수님이 세 사람과 나눈 대화 속에는 집 문제와 가족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절대적 가치처럼 되어 버린 두 가지 사안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예수께서 단호하게 일러주신 내용을 보면, 사람을 평가하고 삶을 설계할 때 적용하는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영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더 급히 해야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않으면서, 하늘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살아가면, 가족 문제와 집 문제도 하나님께서 점차 도우시지 않을까요?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人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마태복음 24:44-47)

“A Place to Lay Your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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