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 예배’ 시리즈 첫 번째 글입니다.
추운 겨울날,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덜덜 떨며 고생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조급해진 마음으로 온도조절기에 대고 “왜 집을 빨리 데우지 못하니?” 하고 탓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연료가 끊겼거나, 밸브가 닫혔거나, 정전 등으로 난방 장치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 특히 매주 참여하는 ‘예배’도 이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은, “예배가 지루하다”거나 “예배에 감동이 없다”는 이유를 들 때가 많습니다. 이는 집이 춥다고 온도조절기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우리는 혹시, 감동 없는 예배를 진행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혹은 은혜로운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는 강단을 향해, “나를 만족시켜 달라!”고 요구하며 원망하고 있지는 않나요?
1. 무대 공연이 되어버린 현대 예배
예배의 본질을 오해한 교회는 어둠과 혼란을 겪습니다. 중세교회의 경우, 예배를 신비로운 의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미사를 멀찍이서 구경하는 ‘관객’으로 전락했습니다. 부패한 가톨릭에 반발하여 일어난 종교개혁과 그 뒤에 이어진 환원운동에서는, 성경의 지침에 따라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회복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보이는 예배의 모습은 어떤가요?
오늘날의 예배당은 화려한 콘서트장이나 극장을 연상시키는 곳이 많습니다. 세련된 조명과 웅장한 악기 소리, 감성을 자극하는 세련된 프로그램들이 예배의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고양된 기분으로 일어섰다가 안락한 의자에 앉기를 반복하며, 수준 높은 공연과 세련된 강연을 감상합니다. 예배가 끝난 후 문을 나서며, “오늘 찬양이 참 좋았어”, “오늘 설교는 감동적이었어”라며 마치 영화 관람평을 남기듯 예배를 평가하곤 합니다.
공연처럼 구성된 예배에는, 예배의 유일한 관객이자 대상이 하나님 한 분뿐임을 망각한 치명적 오해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관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온 마음을 드리는 ‘예배자’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고안해 낸 종교적 양식도, 전통의 산물도 아닙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무한한 지혜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예배에는, 인간의 취향이나 시대의 유행에 따라 변형하거나 수정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2. 참된 예배의 나침반, ‘영’과 ‘진리’
주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검과도 같아서, 우리의 현실을 날카롭게 바로잡습니다. 참된 예배 역시, 주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대전제가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4) 오늘날의 교회가 화려한 건물이나 세련된 시스템에 집착하는 것은 이 말씀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희생제물을 바치는 외적인 의식에 매여 있었지만, 신약시대 예배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외형을 꾸미기보다, 우리의 영혼이 진리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 있는지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영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거듭난 영혼이 하나님의 성령과 깊이 교감하며 예배함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지만 마음이 세상의 염려와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영의 예배가 아닙니다.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기준에 따라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의 눈에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보일지라도, 성경의 경계를 넘어서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의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마음에 위로를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참된 예배의 본질은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와 주권 앞에 온전히 엎드리는 순종에 있습니다.

3. 성경의 설계도로 확인하는 세부 원칙과 실천 방안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을 받던 초기교회의 예배 모습을 보면, 예배의 본질적인 요소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사도행전 2:42)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사도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교제를 나누었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며 ‘떡을 떼는’ 만찬을 행했으며, 마음을 모아 ‘기도’에 힘썼습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흥미나 복잡한 의식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말씀과 찬송, 교제, 주의 만찬과 기도라는 본질에 집중할 때, 예배는 비로소 순수함을 회복합니다.
예배는 거룩한 약속을 이행하는 자리입니다. 한 주간의 첫날은 “주(主)의 날”입니다. 그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고, 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이 소중한 날에 온 교회가 함께 모여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만찬 중심의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순수함을 회복한 예배에서는 찬양도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찬양의 원형은 목소리로 드리는 고백에 있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을 부르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새서 3:16-17) 인간이 만든 기계적인 악기 소리가 찬양의 중심을 차지하면 안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백이 담긴 신령한 노래가 예배당을 채워야 합니다. 가사 하나하나에 온 영혼을 담아 고백하는 찬송의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구경꾼’의 태도를 버립시다. “오늘 예배가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묻지 말고, “오늘 나의 마음과 목소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향했는가?”를 질문합시다. 둘째, 가정에서부터 자녀들과 함께 예배의 가치를 세우고, 주의 날 예배에 온 가족이 함께 참석합시다. 가족이 나란히 앉아 함께 찬송하고 동일한 말씀을 들으며, 주중에는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예배는 가족이 함께하는 통합된 자리이어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1,4) 바울 사도가 보내온 이 편지를 회중 앞에서 읽을 때, 어린 자녀들도 함께 앉아 들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의 말씀 안에서 양육을 받을 때, 가정과 교회는 영적으로 굳건히 연결됩니다. 분반 모임은 예배 전후에 별도로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화려한 무대를 찾고 계십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주님의 시선 앞에서 온 영혼을 바치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간절히 찾고 계신 사람은, 화려한 프로그램의 관객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옷 입은 신실한 예배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다소 투박하다 할지라도, 영과 진리로 드리는 순수한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고,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예배’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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