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미움’ 시리즈 첫 번째 글입니다.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그 안에 미움이 자리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쉽게 풀립니다. 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악과 싸워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대적하는 것들을 미워하고 이겨야 합니다.
‘미움’과 ‘싸움’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미워하고 무엇과 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우리 안에서 이 모든 싸움이 끝날 때가 옵니다.
잠언 6: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하나님이 미워하고 마음에 싫어하시는 일곱 가지 가운데 첫 번째는 “교만”입니다.
무하마드 알리라는 전설적인 권투선수가 있었습니다. 권투도 잘했지만,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습니다”와 같은, 적극적이고 재치 있는 말들로 유명했습니다. 전설적인 유명인이 흔히 그렇듯, 무하마드 알리에 대해 전해 오는 일화들은, 실화인지 아닌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알리 선수가 비행기를 탈 때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승무원이 와서 안전벨트를 매라고 안내하니까, 알리가 대꾸하기를, “슈퍼맨은 안전벨트 필요 없어요”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승무원이 재치있게 응수했습니다. “슈퍼맨은 비행기도 필요 없어요, 고객님.”
에스겔은 교만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던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서 7장 10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이 피며, 교만이 싹이 났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교만을 경계하는 내용이 100회 이상 나옵니다. 에스겔이 예언하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마음에 교만이 싹을 틔운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몸의 모든 지체가 겸손해야 합니다.
헬라어에서 ‘교만’을 나타내는 말 가운데는, ‘연무로 감싸다’, ‘자만심으로 우쭐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가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높아지려 합니다. 교만하지 않다고 해서 꼭 겸손한 것은 아니지만, 겸손한 사람은 오만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교만한 사람과 달리, 자기를 낮춥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높이십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6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가운데 첫 번째로 “교만한 눈”이 등장했습니다. 여기서 굳이 ‘눈’을 말씀하신 이유는, 눈높이와 눈짓을 통해 교만한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만한 눈”이라는 표현을 히브리어 본문으로 보면 “높은 눈”입니다.
우리말에서 ‘눈이 높다’라는 표현은 좋은 뜻도, 나쁜 뜻도 될 수 있습니다. ‘정도 이상의 좋은 것만 찾는 버릇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안목이 높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에서 “높은 눈”은, 우리 몸에서 떨쳐버려야 할 태도입니다. 성경은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보여주고,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므로, 피조물이자 종인 우리는 지극히 ‘낮은 눈’으로 성경을 대하고, 동료를 대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연약한 인간이기에, 성경에 기록된 내용만 보아도, 큰 죄를 세 가지나 범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내용을 보면 ‘이래서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용맹스러운 사람이었으므로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똑바로 보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교만한 눈을 높이 들지 않도록 늘 자신을 경계했습니다. 시편 131편 1절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편 101편 5절에는 다윗의 통치 이념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그가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에서,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잠언> 30장에는 아굴이 기록한 잠언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눈이 높은 자’들이 등장합니다. 잠언 30장 13절에 보면,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무리에 속하지 않도록, 특히 나이가 들면서 이런 모습으로 변해가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예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면서,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드셨습니다. 그 목록에 “교만”이 포함됩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부터 23절 말씀입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교만한 사람은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자기를 올려 놓습니다. 이러한 말과 태도가 자기를 더럽게 합니다.
교만은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교만”이 죄가 된다는 사실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설령 죄가 된다고 해도 가벼운 죄에 불과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하지만 이사야서 55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셨듯,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릅니다. 우리가 내리는 판단은 하나님의 지혜로움과 감히 견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예닐곱 가지 가운데 첫번째로 등장한 죄목이 “교만”임을 명심합시다. 교만은, 살인, 거짓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일보다도 더 근본적인 죄에 속합니다.
사탄은 교만으로 가득찬 악한 눈길로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았고, 그 자리에 자기가 앉고자 탐을 냈습니다. 그 후,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미혹에 빠뜨릴 때에도, 사탄은 교만을 이용했습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보면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금지한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며 교만을 부추겼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서는 교만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마 11:29; 빌 2:5; 벧전 2:21-22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예수께서 복이 있다고 강조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교만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왕들을 쓰러뜨리며,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지역교회 장로들과 전도자들을 좌절시킵니다.
(제2부에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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